은혜를 담은 글

은혜를 담은 글| Blessing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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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와 대화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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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Date
2015-07-0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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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늘 듣었던 말이 있습니다. “친구 잘 사귀어야 한다”.

이 말은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계속 들어야만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말씀하셨던 가장 큰 이유는 친구를 닮기때문입니다. 좋은 친구를 사귀면 좋은 사람이 되고, 나쁜 친구를 사귀면 나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공부 잘 하는 친구와 사귀면 자연스레 공부를 잘 하게 되지만 공부를 못하는 친구를 사귀게 되면 공부를 잘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담에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처럼 친구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믿음이 달라집니다. 좋은 목사를 만나면 믿음이 성장하지만 나쁜 목사를 만나면 하나님까지도 외면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성령세례를 받게 되며 그 때에 성령님께서 그 사람 안에 내재하시게 됩니다. 그때부터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성령님과 동행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전혀 성령님과 동행하지 않습니다. 성령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차원높은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마귀의 백성

그런데 성령님과 동행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마귀와 동행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당연히 마귀와 동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마귀와 함께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은 마귀와 동행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마귀와 함께 지옥에 갈 운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귀와 적대적인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귀와 친구내지는 아주 가까운 그런 사이라고 봐야 옳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권고의 말을 했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후 6:14-16)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말은 함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마리의 소가 하나의 멍에를 같이 지고 일을 하는 것을 생각하면 위 구절을 더 확연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주장은 너무나 강력합니다. 믿지 않는 자를 가리켜 ‘불법’ ‘어두움’ ‘벨리알’ ‘우상’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빛과 어두움의 관계와도 같아서 도무지 함께 멍에를 멜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심할 정도로까지 강력하게 주장했던 이유는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마귀의 백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바울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목사님, 믿는 사람이 도무지 믿지 않는 사람과 어울리지 않으면 지구를 떠나 살아야하지 않을까요?”라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지구를 떠난다 할지라도 절대로 믿지 않는 사람과는 함께 어울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안믿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피해를 당하는 것은 본인이 될 것입니다.

다만 믿는 사람이 안믿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것은 전도뿐입니다. 안믿는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한 목적으로는 얼마든지 안믿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흥을 목적으로 만난다거나 기타 세상적인 관심과 유익을 목적으로 만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로 마귀의 백성과 어울리는 법이 아닙니다.

마귀와 대화하지 말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이 땅에 떨어짐을 당한 마귀는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믿는 자들을 공격하여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멀리하게 만들고 자신과 함께 지옥불에 떨어지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마귀의 이러한 계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마귀가 사람들에게 펼치고 있는 계략을 안다면 그 누구도 마귀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귀의 계략은 너무나 교묘하기 때문에 여간해선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처음 마귀의 공략에 넘어진 사람은 하와였습니다. 하와는 마귀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하와가 마귀와 대화를 나눴을 때 그가 마귀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와는 남편외의 또 다른 사람이나 천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죄악이 전혀 없는 에덴동산에서 자신을 유혹할 마귀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조차도 알지 못하면서 무방비 상태로 마귀를 만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와는 마귀를 만났고 마귀는 하와를 공략했습니다. 마귀가 하와를 공략할 때 사용했던 것은 먹음직 스럽고, 보암직 스러우며, 탐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선악과였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봤을 때 그녀의 마음에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 3:6)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와는 그 선악과를 따 먹었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왜 하와가 마귀의 공략에 넘어 갔을까요? 마귀가 뛰어났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하와가 어리석었던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마귀가 뛰어난 자임은 사실이지만 하와 역시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던 영적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에덴동산을 친히 다스렸던 사람이었고 수많은 짐승들과 평화스럽게 공존할 수 있었던 능력의 사람이었으며 만물을 다스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능력의 사람이었던 하와와 아담이 마귀의 공략에 미혹을 받아 에덴동산에서 쫓겨 났던 것은 다름 아닌 마귀와 대화를 나눴기 때문입니다.

하와는 처음 마귀를 만났을 때 낯선 피조물임을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창 3:1)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아니면 한 두마디 말을 건넨 후에는 그 즉시 상대방이 어떠한 사람이며 내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에 대해 파악을 할 수 있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하와는 그렇지 못했으며 마귀와 계속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말았습니다.

뱀의 형상을 띈 마귀는 하와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마귀가 하와에게 질문했던 말은 옳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와가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마귀가 자신의 질문이 틀렸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천만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귀 역시 자신의 질문이 틀렸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귀는 그렇게 질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하와를 공략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계략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하와는 아무런 생각없이 마귀가 던진 질문에 답을 주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러한 대화로 인해 엄청난 죄를 짓게 될 것이라고는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했습니다.

하와가 했던 말을 보십시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 3:2-3).

하와의 말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하와의 말을 통해서 하와가 하나님께 죄를 범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와의 말을 통해서 하와는 하나님께 큰 죄를 범하고 말았으며 그의 인생은 완전히 처참하게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절대로 죽을 수 없는 육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의 죄로 인해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육신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살기 좋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광야로 나가 살아야만 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과 영적인 고통을 모두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와가 잘못했던 가장 큰 것은, 마귀와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하와는 마귀가 어떤 자인 것을 가장 먼저 알았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마귀와 절대로 대화를 나누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마귀가 어떤 자인지를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마귀와 대화까지 나누고 말았습니다. 단순히 이것 때문에 하와의 인생이 그렇게 변했다고 한다면 당신은 제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가장 실수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마귀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마귀가 어떤 자이고 마귀가 어떻게 사람들을 공략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마귀에게 KO승을 당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어떤 자인가를 알지 못할 수는 있을지라도 절대로 마귀와 대화를 나눠서는 안될 것입니다.

마귀와 대화하는 것의 실체

저는 마귀와 대화를 나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보기 좋게 마귀에게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어쩌면 당신도 마귀와 대화를 나눴을 것입니다. 지금도 마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교회로 풀타임 사역자로 부임했습니다. 아직 목사안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전도사 신분이었습니다. 성가대 지휘도 하고 청년부까지 맡았기 때문에 교회의 많은 사람들과 빨리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자주 설교를 시켰기때문에 설교를 할 때면 사람들의 칭찬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자주 저희 가족을 초대했고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로부터 담임목사님에 대한 안좋은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반응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사람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담임목사보다 제가 더 잘난 줄로만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사람들과 함께 담임목사님에 대한 흉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때로는 너무 신이 났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눈치챈 담임목사님은 저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느 한 날 저에게 교회를 떠나라고 강요했습니다.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폭발할 지경이었습니다. 그 동안 여러 부교역자들이 그런식으로 쫓겨났는데 더 이상은 안된다는 것이 성도들의 의견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사람들은 저와 함께 교회를 개척하면 어떻겠느냐는 말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서 ‘아차’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절대로 이 지역에서는 개척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처음에 맹세했던 서약대로 그 지역을 떠나 차로 3-4일 걸리는 거리에다가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저를 좋아하고 따르던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저를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교회를 반으로 가르고 서로 다른 곳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멀리서 교회를 개척하면서 제 마음 속에는 그 담임목사님에 대한 죄의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서 그 담임목사님께 사죄의 편지를 썼습니다. 제가 그 담임목사님께 지은 죄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죄 중에서도 가장 큰 죄는 담임목사님을 헐뜯는 대화에 동조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와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너무나 늦게 깨달았습니다. 몇년전 성령님의 대화를 나누고 지금껏 국성연을 이끌어 온 지금까지도 마귀와의 대화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어제 묵상을 하다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귀와 대화를 나누면 남편도 원수로 변하고 아내도 원수로 변하게 됩니다. 마귀와 대화를 나누면 사랑스런 자식이 원수로 변합니다. 마귀와 대화를 나누면 목사님도 원수로 변하게 됩니다. 마귀와 대화를 나누면 사랑하는 친구도 한 순간에 원수로 변하게 됩니다.

마귀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 보십시오. 저들의 성격이 매우 거칠어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대화보다는 강압적인 면이 옅보입니다. 무슨 말을 할지라도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마치 철없는 사춘기 시절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사람이 완전히 변해 있습니다.

마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십시오

마귀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죽이지만 그 사람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죽게 만듭니다. 갸롯유다를 기억하십니까? 갸롯유다는 예수님을 죽게 한 장본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죽게 하고선 자신도 목메달고 죽었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 13:2)

마귀는 가장 먼저 우리의 생각을 공략합니다. 생각이 무너지지 않으면 육신의 공략도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마귀가 넣어준 생각으로 가득차게 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마귀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눅 22:3)

“사단이 들어가니”란 말을 주의깊게 읽으십시오. 사단이 어떻게 사람에게 들어갈 수 있습니까? 맞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단이 유다의 생각에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어준 것은 유다가 마음의 문을 열여 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마귀는 계속적으로 우리의 생각의 문을 열도록 문을 두드립니다.

하지만 마귀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뒷문으로 들어갑니다. 몰래 담장을 넘어서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땅굴을 파서 집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씁니다. 마귀의 집요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더 이상 마귀는 우리의 생각에 마귀의 생각을 넣지 못합니다.

가룟 유다는 마귀가 문을 두드릴 때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막 14:10) 자신이 어떤 일을 행하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마귀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마 27:3) 자신의 죄를 회개했지만 이미 주님께서는 십자가형을 당하셨고 더 이상 회개의 기회마저 갖지 못하고 목매달아 죽고 말았습니다.

마귀는 마음의 문을 열려고 합니다

마귀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마귀에게 자신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래서 마귀는 열린 저들의 문을 통해 마귀의 생각들을 집어 넣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깨닫지 못하고 마귀가 주는 생각대로 따라 행동할 뿐입니다.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마귀의 생각을 넣었더니 어떻게 행동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막 14:11).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예수님께서 얼마나 사랑했던 제자입니까? 처음부터 예수님을 팔 자로 정하시고 제자로 삼으셨다고요? 천만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11제자들에게 보이신 사랑을 똑 같이 유다에게 전하셨습니다. 어쩌면 가룟 유다를 더 총애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가룟유다는 재정을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군중들은 수 천명에서 수 만명에 달했을 것입니다. 매일 사역을 행하였기 때문에 모인 수많은 군중들을 위해 필요한 사역자금은 굉장한 금액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포함해서 수많은 여인들이 빨래며 음식이며 사람들 접대며 여러가지 봉사일로 섬겼을 것입니다. 그렇게 복잡한 사역일을 위해 재정관리는 매우 중요한 직무였을 것입니다. 바로 가룟 유다가 그 일을 담당했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으로부터 신뢰를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가룟 유다가 스승을 배반한 것입니다. 가장 많이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은 삼십세겔에 스승을 팔아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뻔 하였으니라”(마 26:24)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태어나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태어났고 마귀의 생각이 마치 자신의 생각인양 착각하고서 자신의 스승인 예수님을 하찮은 돈 때문에 팔아 버렸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회개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매달아 죽음으로 인해 마귀와 함께 지옥불에 떨어질 것을 주님께서는 아셨던 것입니다.

만약에 당신에게 이런 상황이 주어진다면 절대로 가룟 유다처럼 되지 마십시오. 절대로 그래선 안됩니다. 가룟 유다에게 지옥불이 기다리고 있듯이 당신에게도 그럴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마십시오.

누군가 당신에게 나타나 스승에 대해 욕한다면 절대로 그 사람과 함께 하지 마십시오. 누군가 담임목사님에 대해 욕한다면 절대로 그 사람과 함께 하지 마십시오. 누군가 직장 상사에 대해 험담을 늘어 놓는다면 절대로 그 사람과 함께 하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이 바로 마귀입니다. 그 사람 자체가 마귀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마귀가 역사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에게 마귀의 생각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지금쯤 가룟 유다는 위대한 성인의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룟 유다는 누군가 예수님에 대해 험담하는 것을 우연찮게 들었고 그렇게 말한 사람과 대화를 나눴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으며 마귀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가룟 유다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의 문은 주님을 향해 열려야 하고 천국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마귀를 향해 열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배우십시오

마귀는 예수님의 마음을 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마귀가 예수님께 다가갔을 때에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지금 40일간 금식을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하와에게 행했던 똑 같은 방법으로 예수님을 공략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언급했던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요 2:16)이었습니다.

돌이 떡이 되게 하라는 마귀의 시험에 예수님은 “기록하였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 4절을 자세히 보면 “기록되었으되”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기록하였으되”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성경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성경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마귀에게 성경말씀으로 단호히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는 달리 사람들은 성경말씀으로 마귀의 공략에 대응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으로 마귀와 대화를 나누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절대로 대화를 나누시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성경말씀으로 단호하게 하실 말씀만 전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방법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방법을 선호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을 버려야 합니다. 오직 성경말씀을 가지고 대응해야 하며, 성경말씀에 씌여진 대로 따라야 합니다.

두번째 사탄의 공격과 세번째 사탄의 공격에도 예수님은 계속적으로 성경말씀을 가지고 대응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는 사탄의 공격에 예수님께서는 “기록하였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마 4:7)고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다른 성경말씀을 인용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마귀가 성경말씀을 인용해 예수님의 마음의 문을 열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뜻을 위해서 성경말씀을 이용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남용한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악용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처럼 성경말씀을 교묘히 이용하여서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양 그릇되이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그래서 이단학설이 만들어지고 이단집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가지고 자신의 뜻을 합리화하려는데 사용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악용이며 남용인 것입니다.

마귀는 최후의 수단으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유혹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때에도 마음의 문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성경말씀을 가지고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10)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마귀는 즉시 떠나고 천사들이 나와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멋집니까.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공격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아셨습니다. 오직 성경말씀을 가지고 마귀를 대적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사단아 물러가라”고 단호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야고보가 말한대로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는 말씀이 옳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지식을 가지고 마귀를 대적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미련한 방법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귀와 대화를 나누려고 합니다. 그것 역시 미련한 방법입니다. 미련한 방법은 사람을 죽게 합니다. 절대로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마귀를 대적하는 사람들

마귀에 속한 사람들은 가장 먼저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 양념 바른 치킨을 선사합니다. 듣기 좋은 말로 점수를 확보한 뒤에 곧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열려고 합니다. 일단 마음의 문이 열어졌다고 생각이 되면 그 즉시 악한 말을 던집니다. 이것이 마귀가 사용하는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이러한 마귀의 술책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 누구라도 마귀와 대화를 나누고 마음의 문을 열면 이길 장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귀에게 마음을 내 준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 보면 이 사람들은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성령에 속한 사람인지 마귀에 속한 사람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합습니다. 처음에는 어느정도 호기심으로 대화를 시작합니다만 어느 순간에 가면 호기심이 마음의 문을 열게 만들고 급기야 마귀는 그 마음을 사로잡아 버립니다.

이렇게 마귀에게 마음을 사로잡힌 사람들은 가룟유다처럼 변질되고 맙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스승이라는 사실을 잊어 버립니다. 예수님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 버립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악을 미워하신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무엇이 성경적인지도 분간하지 못합니다. 마귀가 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때문입니다. 악한 영이 그 사람을 사로잡고 있을 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게 됩니다.

저는 최근에 마귀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들은 마귀와 대화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몇 마디 말을 듣고는 바로 그 사람들과의 대화를 끊어 버립니다. 대화가 단절되었습니다. 마귀는 떠나고 그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지킨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성경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셨듯이 이 사람들도 성경말씀을 가지고 마귀를 대적했습니다. 저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으로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성경말씀으로 대적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국제성경연구원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사역입니다. 국성연에서 내세우는 가장 절대적인 진리는 “오직 성경말씀만이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임을 믿습니다”입니다. 그 어떤 예언의 말씀이나 보여지는 환상이 성경말씀보다 우선시 될 수는 없습니다. 어떠한 결정을 하거나 사역을 진행할 때에도 성경말씀과 위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국성연을 인도하면서 반장님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저들을 반장으로 세웠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저들의 권위를 존중해 왔습니다. 하지만 저들의 가르침 중에서 성경적이지 못한 것이 드러날 때에는 아주 단호하게 잘못된 것을 지적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성령님으로부터 들은 예언의 말씀을 확고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드리고서는 마치 그것이 성경말씀보다 더 위에 있는 것처럼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저 역시 국제성경연구원을 인도하는 리더자로서 항상 성경말씀을 최우선에 두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할지라도 성경말씀과 위배되는 것은 없는지 확인합니다. 환상을 봤다고 할지라도 성경말씀을 통해서 검증을 받습니다. 심지어 성령님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성령님 그 말씀에 맞는 성경말씀을 주십시오”라고 정중히 부탁을 드립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그 말씀에 합당한 성경구절을 주십시다.

예수님께서도 성경말씀으로 모든 사역을 행하셨듯이 우리 또한 성경말씀으로 모든 생각과 행동의 지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마귀가 우리에게서 틈을 찾지 못할 것이고 우리를 공략할지라도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다윗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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