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담은 글

은혜를 담은 글| Blessing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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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영에 상처를 내지마십시요

Author
admin
Date
2015-07-09 17:01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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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짜증이 나고 화가 치미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이유가 없는데 자주 짜증이 나고 까닭 없이 화가 나고 하나님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들어서 “내가 왜 이러지”하고 의아해 하게 됩니다. 때로는 모든 것이 싫어지고 교회에 나가는 것조차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밀려옵니다. 우리는 이럴 때 일반적으로 시험이 들었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시험들만큼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해서 아마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상태를 그냥 버려두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심하면 교회를 떠나기까지 합니다. 정말로 시험이 드는 겁니다.

이렇게 시험이 든다고 일반적으로 표현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의 상처로 인한 것입니다. 속사람이 상처를 입어서 아픔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은 우리가 생각하기보다 훨씬 연약합니다. 그래서 자주 상처를 입을 수 있고 아픔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연인이나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영이 죽은 상태이므로 이들에게는 오로지 육체적 감각으로만 살아가지만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는 영의 건강을 돌보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상처를 받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흔하게 겪으면서도 잘 모르고 지내는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의 영이 아직 어려서 상처 받기 쉬운 사람과 영이 강해서 웬만한 것에는 전혀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이 강건해야 하는데 이런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이 약한 상태에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룰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영이 약한 사람은 영적 두려움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담대함이 부족해서 영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하지 못합니다. 고난이 오면 쉽게 지치고 괴로워합니다. 악한 영과 대적할 때 쉽게 지치고 무기력해집니다. 실제로 축사하는 장소에 가면 이런 사람들은 영이 피곤해서 바로 지쳐버립니다. 그래서 기도도 하지 못하고 심하면 잠들어버립니다. 늘 기도하던 장소가 아닌 낯선 곳에서는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특히 산에서 기도하거나 밤에 기도할 때 거의 하지 못합니다.

의지를 가지고 하려고 해도 기도에 힘이 없어지고 조금 하다가는 곧 그만 두고 맙니다. 영이 약한 사람은 기도에 힘이 없기 때문에 늘 하는 기도만 합니다. 늘 다니던 길로만 다니는 것처럼 일상으로 해온 기도 내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합니다. 영이 약한 사람은 의지도 약합니다. 지속적으로 하지 못하고 늘 그 자리에서 맴돌 뿐입니다. 이런 사람이 영의 상처를 입게 되면 앞에서 언급한 그런 시험 든 것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원인을 알지 못하게 무력해지는 것은 상처를 입은 것인데 우리의 영이 가장 쉽게 상처를 입는 예를 살펴봅니다.

영의 상처는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악한 영과 접촉할 경우에 생깁니다.

악한 영을 대적하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 주변에는 악한 영을 지닌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적으로 강건하거나 영분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은 이런 영을 바로 알아차리지만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악한 영을 지닌 사람을 만나거나 악한 영이 있는 장소에 들어가서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 까닭에 합당한 영의 보호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영은 피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성령이 내주하셔서 보호하십니다. 그런데 이 보호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범죄하면 이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되며, 성령은 심각하게 약화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악한 영과 접촉을 하게 되면 상처를 받게 되고 그 상처로 인해서 속사람은 힘을 잃게 되며 영의 피곤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 곤비함이 육체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짜증을 만들어내며, 화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영이 약한 사람이거나 상처가 심한 사람은 악한 영과 직접 접촉하지 않고 나쁜 내용의 드라마를 보기만 해도 상처를 받습니다.

갈등과 불륜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런 드라마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영은 피곤하고 지치게 됩니다. 영적으로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드라마를 자주 보게 되면 영의 힘이 소멸되고 영이 약하게 됩니다. 영이 약한 사람은 드라마를 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대신에 영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일정 분량 이상 읽어야 합니다. 저의 경험으로도 날마다 2~3시간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꼼꼼히 읽고 그 말씀을 1시간 이상 묵상하는 일을 수년간 거르지 않고 꾸준히 한 결과 영적 능력이 매우 강해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영적 능력을 과신하고 함부로 안수할 때 영은 상처를 받습니다.

안수는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안수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위험할 수 있습니다. 안수의 여러 가지 의미 가운데 가장 주요한 것이 죄의 전가(轉嫁)입니다. 안수 받는 사람의 죄를 자신에게 넘겨받아서 주님에게로 넘기는 것입니다. 죄의 실제적 표현으로 나타난 질병의 경우 그 질병이 곧 죄의 모습입니다. 이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환부에 손을 얹는 경우 그 질병이 자신의 몸을 통해서 주님에게 넘어갑니다. 그런데 이 죄가 주님에게로 넘어가지 않고 자신에게 머물 수 있습니다. 일정 기간 동안 자신에게 머물었다가 주님에게로 넘어가는 간극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안수한 사람은 환자와 동일한 병증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중보기도인데 중보하는 사람에게 전가된 문제는 중보자에게 고통을 안겨줍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결과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죄의 처리가 되지 않고 안수자에게 넘어와서 자신의 병이 되고 마는 경우가 있습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이런 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반대로 안수하는 사람의 악한 요소가 피안수자에게 전가되어 더욱 고통스럽게 됩니다. 영이 더욱 피곤하고 상처를 입게 되어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부흥회에서 무작위로 하는 안수를 받고 난 후에 믿음이 식어지고 짜증이 나고 하는 영의 상처를 입은 경우를 흔히 봅니다. 경미한 경우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심각한 경우에는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안수를 받기 전에 보호기도는 서로 간에 필수입니다. 서로를 잘 아는 사이에는 별로 경계할 이유가 없지만 낯선 사람으로부터 안수를 받아야 할 경우 또는 부흥회에서 부흥사로부터 안수를 받게 될 경우 우리는 그 부흥사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호기도를 해야 합니다.

영의 상처는 경건하지 못한 물건을 만지거나 장소에 들어갔을 때 받게 됩니다.

경건하지 못한 장소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우리는 영의 에너지를 엄청나게 빼앗깁니다. 일반인들은 이런 감각이 없지만 영적 사역을 하는 전문 사역자들은 영의 흐름을 민감하게 느낍니다. 영의 에너지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느낌으로써 그 장소에 대한 영적 진단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 지역에 대한 영적 메핑(spiritual mapping)을 하게 되면 그 원인을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어떤 가정에 들어갔을 때 역시 영의 흐름을 느낌으로써 그 가정의 영적 상태를 알게 됩니다. 어떤 여인이 주님의 곁으로 몰래 다가와 옷자락을 만졌을 때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가는 것을 느끼고 반응했던 예수님의 태도에서처럼 영적 사역자는 그런 영의 에너지의 들어오고 나감을 통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영적 에너지의 교류는 어디서나 항상 있는 것이지만 주의 제자들이 그런 내용을 모르고 사람들이 많아서 밀친 것이라고 생각하였듯이 일반인들은 육체적 안목으로만 사물을 대합니다. 그래서 심각한 영적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장소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기 때문에 영이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영의 상징물을 지니고 있을 때 영은 심각한 상처를 입습니다.

하나님은 상징(image)이십니다. 영은 그 존재를 세상에 드러낼 때 상징을 통해서 하게 됩니다. 상징은 바로 본체를 대신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상징)입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마귀는 마귀의 상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마귀는 각각의 상징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징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뱀, 개구리, 용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구약은 우리에게 부정한 것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규제법을 그리스도 안에서 외형적인 의미가 없어졌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자신을 드러내는 상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형이나 장식물의 형태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지요. 이런 것을 몸에 지님으로써 영이 상처를 입고 지속적으로 힘을 빼앗기게 됩니다. 어떤 지역에 갔을 때 그곳에서 토산물이라고 하면서 파는 케릭터 상징물의 경우 대부분이 그 지역의 악령을 상징한 것입니다. 외국에 여행가서 그 나라의 고유한 민속품이라고 해서 기념으로 그런 장식물을 사서 집안에 들여놓는 일은 너무 위험합니다. 그 일은 사단과 그에 따른 저주를 합법적으로 자신의 삶 속에 들여놓는 결과가 됩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적으로 상처를 받습니다. 이런 부지불식간에 입은 상처와 범죄를 위해서 구약에서는 속건제를 드렸습니다. 지금도 이 법의 정신은 유효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를 마감하면서 그 날에 입은 영적 상처를 주님으로부터 치유함을 받고 새 힘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런 절차를 행하지 않습니다.

거의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고, 기도의 의미조차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을 얻어야 영이 강건해지고 여러 가지 영적 현상들을 소화할 수 있게 됩니다.

기도의 힘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고 주야로 묵상했던 이스라엘처럼 우리 역시 이 조건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에 힘써서 자신의 영이 강건해서 거친 영적 도전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은 여러분을 의의 용사로 사용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능력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혀 사용할 수 없는 그런 무력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맙시다.


--장봉운 목사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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